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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민간잠수사 김순종씨] 국가 빈자리 채운 대가로 생업 잃고, 생활고 시달려 2025-04-16

[세월호 민간잠수사 김순종씨] 국가 빈자리 채운 대가로 생업 잃고, 생활고 시달려 < 노동안전 < 안전과 건강 < 기사본문 - 매일노동뉴스


민간잠수사 25명 중 8명 골괴사 진단

김순종씨는 스무 살에 해군 특수부대 해난구조전대(SSU)에서 복역하면서 잠수 일을 처음 시작했다. 1972년부터 5년6개월간 군 생활을 마치고 하사로 전역했다. 이후 군생활 경력을 바탕으로 산업잠수사가 됐다. 산업잠수사는 수중에서 교각, 선박 접안시설, 부두나 방파제와 같은 구조물을 설치·보수하거나 인명을 구조하는 일을 한다. 일이 고되고, 위험해 통상 일당이 50만원(올해 기준) 수준으로 높은 편이다. 수심과 업무 난이도에 따라 더 많은 일당을 받기도 한다. 많은 잠수사가 업체에 고용되기보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이유다. 잠시 적을 둘 때도 있었지만 김씨도 대부분의 세월을 프리랜서로 일했다. 생계를 꾸리기 부족함은 없었다.

생계가 기운 건 세월호 구조작업에 참여해 골괴사 진단을 받은 2014년 7월 이후부터다. 세월호 안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한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안전규정도 무시한 채 2~3개월간 압축노동을 한 직후다.

“본래 잠수사가 바다 안으로 20미터 이상 들어가면 12시간 이후에 일을 해야 해요. 그래야 몸에 있는 기포가 다 빠지거든요. 그런데 그땐 사람이 없으니깐, 6시간마다 한 번씩 들어갔어요.”

해경에는 수심 깊은 곳에 들어가 시신을 인양할 수 있는 인력이 없었다. 국가의 공백을 김씨를 비롯한 25명 민간잠수사가 메웠다. 뭍에서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를 위해 제 몸이 상하는 줄도 모르고 일했다.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나요. 애들이 불쌍해서요. 한 객실에 보통 7~8명씩 있어야 하는데, 어떤 객실 가면 25명, 어떤 객실 가면 4~5명 있고 그러더라고요. 아이들끼리 손을 꼭 잡은 애들도 있고, 껴안은 애들도 있고….”

시신 인양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쯤 해경은 그해 7월 민간잠수사에게 철수를 일방 통보했다. 이후 25명의 잠수사들은 삼천포 서울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고, 김씨를 포함한 노동자 8명이 골괴사 진단을 받았고 2명은 수술을 했다. 김씨는 바로 수술을 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지금 그는 그때의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한다.


산재가 인정된 그해 12월 김씨는 장해급여를 신청했다. 하지만 공단은 지난해 5월 장해급여청구권의 소멸시효 기산일은 치료가 끝난 2014년 1월14일로 소멸시효 3년이 지났다며 장해급여 불승인을 통보한 상태다. 김씨에게 실낱같은 희망마저 사라졌다.

이영만 공인노무사(법무법인 감천)는 “장해급여 소멸시효 기산은 업무상 사유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것이 확인된 후, 당해 부상 내지 질병이 치유돼 신체에 장해가 있게 된 날부터 진행하는 것”이라며 “근로복지공단 통영지사가 골괴사에 대해 최초요양급여를 승인한 2022년 6월21일부터 재해자의 장해급여청구권이 진행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산재가 인정된 날로부터 3년, 즉 2025년 6월까지가 소멸시효라는 주장이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s://www.labortoday.co.kr)